1910년전 한국의 생활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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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국방문 1925년 5월14일 ~ 10월2일

베버 신부는 한국에 대해 
"내가 그렇게도 빨리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나라였다." 라고 
고백 했습니다. 1925년 촬영된 영화 '고요한 아침에 나라'에서는

한국에 대한 한 독일인 선교사의 지극한 사랑과 연민의 기록입니다. 
버 신부는 직접 영화에

 
출연해 당시 영화를 보는 독일인 관객들을 위해 칠판에 지도을 그려가며
 
한국을 유럽의 이탈리아반도와 비교해서 묘사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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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수도 서울 시가지의 모습(큰 건물은 명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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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소문) 태조 1397년 건립, 일제강점기 전차공사중 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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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북한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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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북한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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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서울 도성 성곽 모습
베버 신부는 서울이 오목한

분지이고 희고 단단한 성곽이 능선을 따라서 
산으로 기오 올라가는 것 같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산을 구름속에 솟아 있는 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서울의 마을들이 주로 산 및에 모여있는 것을 
주목 했습니다. 

그리고 쌀을 좀 더 많이 재배하기 위해서 넓고 좋은 땅은 

농토로 삼았고 집은 비좁은 산 비탈에 잡았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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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 신부가 찍은 사진(절? 암자?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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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 신부는 한국인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하루종일
 
연과 함께하다가 석양을 뒤로 하고 맑은 미소를 머금은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고, 자연을 정복하기 보다 
그 찬란함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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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 신부는 한국의 문화를 존경 했습니다. 
독일 민족이 아직 숲에서 뛰어 다닐때 한국은 이미 고도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 여겼습니다. 
그에게 감동을 주었던 한국 '문화' 그 중에 하나는 

'효도' 입니다.천년 이상 지속된 유교전통에 따라 복종과 순종 
그리고 

권위에 대한 인정은 한국인들이 때어나면서 배워오고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조상과 어른을 대한 감사와 존경이 삶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깊은 감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은 그를 사로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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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베 신부는

한국의 농경 문화에 주목하면서 
특히 품앗이 라는 노동 형태에 매료 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어디어서도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의 공동체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노동을 통해 성숙된 공동체문화' 
이는 
카톨릭 공동체에 거대한 뿌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베버 신부는 인본의 신민지 폭력성 앞에서

아름답고 고귀한 한국의 공동체 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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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금강산 장안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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