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잘못 건 전화 ...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였다.
 
 
 
시작은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친구에게 건다는 게 그만 엉뚱한 번호를 눌렀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아빠~?” 
 
 
 
아마도 내 딸 현정이와 비슷한 또래로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는 여자아이 목소리였다. 
 
 
 
“넌 아빠 번호도 모르니? 
 
저장이라도 하지 !”
 
 
 
괜히 내 딸 같아서 
 
핀잔을 준 건데 ...
 
 
 
“아빠 바보...
 
나 눈 안 보이잖아!”
 
 
 
순간 당황했다. 
 
‘아! 장애있는 아이구나’
 
 
 
“엄만 요 앞 슈퍼가서
 
대신 받은 거야 
 
아빠 언제 올거야?”
 
 
 
너무 반기는 말투에 
 
잘못 걸렸다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아빠가 
 
요즘 바빠서 그래”
 
 
 
대충 얼버무리고 
 
끊으려 했다.
 
 
 
“그래도 며칠씩 안 들어오면 어떡해?
 
엄마는 베개싸움 안 해
 
준단 말야.”
 
 
 
“미안~ 아빠가 바빠서 그래!
 
일 마치면 들어갈게”
 
 
 
“알았어 그럼 오늘은 꼭 와 
 
끊어~”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됐다. 
 
애가 실망할까봐 그랬지만 결과적으론 거짓말한 거니까, 
 
큰 잘못이라도 한 것 처럼 
 
온종일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날 저녁, 전화가 울린다. 
 
아까 잘못 걸었던 그 번호... 
 
왠지 받기 싫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받았다.
 
 
 
“여~~ 여보세요?” 
 
침묵이 흐른다.
 
 
 
“여보세요” 
 
 
 
다시 말을 하니 왠 낯선 여자가...
 
 
 
“죄~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대서요”
 
 
 
“아~ 네... 낮에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는데 
 
아이가 오해한 거 같아요.”
 
 
 
“혹시 제 딸한테
 
아빠라고 하셨나요?
 
아까부터 아빠 오늘 온다며 
 
기다리고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아니에요. 
 
사실 애 아빠가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셧어요.
 
우리 딸이 날 때부터 
 
눈이 안 보여서 
 
아빠가 더 곁에서 보살피다보니
 
아빠에 대한 정이 유별나네요”
 
 
 
“아~ 네! 괜히 제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딸한테
 
아빠 바빠서 오늘도 못 가니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그냥 그렇게만 하면
 
될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잠도 안 자고 기다리는 게 
 
안쓰러워서요.
 
죄송합니다. 
 
참 애 이름은 '지연'이에요.
 
유지연! 
 
5분 뒤에 전화 부탁드릴게요“
 
 
 
왠지 모를 책임감까지 느껴졌다. 5분 뒤에 전화를 걸자 
 
아이가 받는다.
 
 
 
“여보세요.”
 
 
 
“어 아빠야~ 지연아!
 
뭐해?”
 
 
 
“아빠 왜 안와? 
 
아까부터 기다리는데”
 
 
 
“응~ 아빠가 일이 생겨서 
 
오늘도 가기 힘들 거 같아”
 
 
 
“아이~ 얼마나 더 기다려?
 
아빤 나보다 일이 그렇게 좋아?”
 
 
 
아이가 갑자기 우는데... 
 
엉겁곁에...
 
 
 
“미안 두 밤만 자고 갈게”
 
 
 
당황해서 또 거짓말을 해 버렸다.
 
 
 
“진짜지? 꼭이다!
 
두밤자면 꼭 와야 해! 헤헤~”
 
 
 
잠시 뒤에 아이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는데 너무 고맙단다.
 
 
 
아이한테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 없어 이틀 뒤에나 간다고 했다니까
 
알아서 할테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 줬다.
 
 
 
그리고 이틀 뒤, 
 
이젠 낯설지 않은 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빠!”
 
 
 
울먹이는 지연이 목소리
 
 
 
“아빠! 엄마가 아빠 죽었대. 
 
엄마가 아빠 이제 다시 못 온대... 아니지? 
 
이렇게 전화도 되는데 아빠 빨리 와 엄마 미워 거짓말이나 하고... 
 
혹시 엄마랑 싸운 거야? 
 
그래서 안 오는 거야? 
 
그래도 지연이는 보러 와야지 
 
아빠 사랑해 얼른 와~”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연아 엄마 좀 바꿔 줄래?”
 
 
 
전화를 받아 든 지연이 엄마는 
 
미안 하다며 애가 하도 막무가내라 사실대로 말하고,
 
전화걸지 말랬는데도 저런단다.
 
 
 
그말에... 딸 둔 아빠로써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제안을 했다.
 
 
 
“저기~~ 어머니! 
 
제가 지연이 좀 더 클 때까지 
 
이렇게 통화라도 하면 안 될까요?”
 
 
 
“네? 그럼 안 되죠. 
 
언제까지 속일 수도 없고요”
 
 
 
“지연이 몇 살인가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아~ 네 저도 딸이 하나 있는데 3학년 이거든요. 
 
1학년이면 아직 어리고 장애까지 있어서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을테니까 제가 1년 쯤이라도 통화하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안 될까요?“
 
 
 
“네? 그게 쉬운 게 아닐텐데”
 
 
 
“제 딸 보니까 1학년 2학년 3학년
 
한 해 한 해가 다르더라고요. 
 
좀 더 크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히려 내가 지연이 엄마한테 
 
더 부탁을 했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연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보름에 한번쯤 지연이와 통화를 했다.
 
 
 
“아빠 외국 어디에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거기서 뭐하는데?”
 
 
 
“어~ 빌딩짓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아~ 거긴 어떻게 생겼어?”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노동자로 몇해 다녀오신 적이 있어서 
 
그때 들은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려 
 
지연이한테 말해줬다.
 
 
 
그렇게 한 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내 딸 현정이 선물살 때 
 
지연이 것도 꼭 챙겨서 택배로 보냈고... 
 
그렇게 지연이의 가짜 아빠 노릇을 
 
전화로 이어나갔다.
 
 
 
“당신 어린애랑 요즘 원조교제 같은 거 하는 거 아냐?”
 
 
 
한때 아내에게 이런 오해를 받을 만큼 자주 통화도 했다.
 
 
 
현정이는 커 가면서...
 
 
 
“아빠 과자 사와, 아이스크림 피자~
 
아빠 용돈 좀~~”
 
 
 
늘 그런 식인데 
 
지연이는...
 
 
 
“아빠 하늘은 동그라미야 네모야? 
 
돼지는 얼마나 뚱뚱해? 
 
기차는 얼마나 길어?”
 
 
 
등등...
 
사물의 모양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안쓰러워 더 자상하게 설명하곤 했지만 가끔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3년쯤 지난 어느날, 
 
지연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지연아 왜?”
 
 
 
“저기~ 나 사실은... 
 
작년부터 알았어!
 
아빠 아니란거”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엄마랑 삼촌이 얘기하는 거 들었어 진짜로 아빠가 하늘나라 간 거”
 
 
 
“그그그~~ 그래 미안~ 
 
사실대로 말하면 전화통화 못할까봐 그랬어”
 
 
 
“근데 선생님이 4학년이면 고학년이래~!
 
이제부터 더 의젓해야 된댔거든”
 
 
 
“지연아! 
 
근데 진짜 아빠는 아니지만 
 
좋은 동무처럼 통화하면 안 될까?
 
난 그러고 싶은데 어때?“
 
 
 
“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그 뒤로도 우린 줄곧 통화를 했다.
 
다만 이제 아빠라고는 안 한다. 그렇다고 아저씨도 아니고 
 
그냥 별다른 호칭없이 이야기하게 됐는데 솔직히 많이 섭섭했다.
 
 
 
그래도 늘 아빠로 불리다가 한순간에 그렇게 되니까... 그렇다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뭐하고...
 
 
 
시간이 흘러 지연이가 맹학교를 졸업하는 날이 됐다.
 
 
 
전화로만 축하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몇해 동안 통화하며 쌓은 정이 있는데 그날만은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목욕도 가고 가장 좋은 양복도 차려 입고 한껏 치장을 했다. 
 
비록 지연이가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처음 만나는 날인데, 
 
그 옛날 아내와 선보러 갈 때보다 더 신경쓴 거 같다.
 
 
 
꽃을 사들고 들어간 졸업식장에서 
 
지연이 엄마를 처음 만났다.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씩 하시는데 왠지 쑥스러웠다.
 
 
 
잠시 후, 
 
졸업장을 받아든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서 나오는데
 
단박에 지연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유독 지연이만 눈에 들어왔으니까
 
 
 
“지연아!”
 
 
 
지연이 엄마가 딸을 부른다. 
 
그러자 활짝 웃으며 다가온 지연이한테...
 
 
 
“지연아! 누가 너 찾아오셨어 맞춰봐”
 
 
 
하며 웃자 지연이는... 
 
“누구?”하며 의아해 할 때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지연아! 축하해” 
 
 
 
그러자 갑자기 지연이가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연이 엄마도 나도 어쩔 줄 모르는데 지연이가 손을 더듬어 나를 꼭 안았다.
 
 
 
“아빠! 
 
이렇게 와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나 착하고 이쁜 딸을 둘이나 둔... 
 
너무 행복한 아빠였음을 
 
그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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